봉준호 감독의 2009년작 를 처음 봤을 때, 저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 영화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그게 단순히 '충격적'이어서가 아니라, 뭔가 진짜 불편한 진실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야 제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더의 모성애가 섬뜩한 이유제가 이 영화를 다시 꺼낸 건, 마더가 피해자 장례식에 빨간 옷을 입고 나타나는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검은 상복으로 가득한 자리에 혼자 빨간 옷을 입고 서서 "내 아들 미워하지 마세요"를 외치는 그 장면이요. 처음엔 그냥 무례하다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이게 단순한 막무가내가 아니었습니다.저는 그 장면에서 스칼렛 오하라가 떠올랐습니다. 에서 모두의 시..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배우보다 감독의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강렬한 복수극과 아름다운 화면에 시선을 빼앗겼지만, 작품을 하나씩 다시 볼수록 반복해서 등장하는 질문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복수는 정말 끝이 있을까. 사랑은 사람을 구원할까. 인간은 자신의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생각해 보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늘 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한 번 보고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새롭게 읽히는 영화가 됩니다. 박찬욱 감독 영화가 특별한 이유, 자신만의 세계관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박찬욱 감독은 국내를 넘어 세계 영화계에서도 가장 독창적인 연출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습니..
영화 밀양을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아이를 잃은 엄마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로 봤을 때 신애라는 인물이 사실 굉장히 익숙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어딘가에서 저 사람을 본 적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요. 아니, 어쩌면 저 자신이 신애를 닮은 시기를 살아본 적 있다는 느낌이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신애의 자기애 — 우리 모두가 살았던 그 시절밀양을 단순히 종교 비판 영화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다른 무언가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신애라는 인물의 중심에 있는 건 신앙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스스로가 세상의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강렬한 자기 중심성(narcissism)입니다. 여기서 자기 중심성이란 단순히 이기적이라는 게 ..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며칠째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십니까. 저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를 여섯 번 봤는데 볼 때마다 마지막 버스 씬에서 같은 자리에서 멈췄습니다. 오늘은 21세기 한국 영화 엔딩 신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미장센과 내러티브 구조 관점에서 뜯어보겠습니다.달콤한 인생 속, 미장센달콤한 인생의 마지막 장면은 이병원 씨가 유리창 앞에서 섀도복싱을 하다 불이 하나씩 꺼지며 어둠에 잠기는 장면입니다. 섀도복싱이란 실제 상대 없이 혼자 주먹질과 발차기를 반복하는 훈련으로, 자기 자신의 움직임을 교정하고 내면의 적과 싸우는 행위로 해석되기도 합니다.이 장면에 대해 "유리창에 비친 자신과 싸우는 것, 결국 스스로 꾼 달콤한 꿈이 파멸의 원인이었다"는 해석이 ..
솔직히 이 영화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라는 말에 몹시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갔는데, 상영 내내 웃다가 나오면서 동시에 뭔가 무거운 것을 하나 얹고 나온 느낌이었습니다. 웃겼는데 아팠고, 아팠는데 계속 생각났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 보고 나서 한참이 지난 지금도 몇몇 장면들이 머릿속을 떠다닙니다.블랙코미디 장르로 읽는 이 영화의 구조제가 직접 봐보니, 이 영화를 '현실적이지 않다'라고 느끼는 분들이 꽤 계시더라고요. 평생 성실하게 일한 가장이 실직 후 살인을 결심한다는 설정이 와닿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분들 말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처음엔 그 지점에서 잠깐 멈칫했으니까요.그런데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Black Comedy)입니다. 여기서 블랙코미디란 비극..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오묘하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산도 바다도 아닌 듯한 묘한 색감, 어딘가 불안정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가 영화 내내 깔려 있었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그때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다시 보니 화면 속 작은 디테일들이 전혀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서래의 집에 걸린 액자와 영화 전체를 감싸는 색채가, 알고 보면 감독과 작가가 치밀하게 설계해 둔 장치였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습니다. 처음 볼 때는 그냥 스쳐 지나갔던 장면이 두 번째에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경험, 아마 이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겪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액자와 색채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리고 그 둘이 어떻게 서래라는 인물을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