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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카,칸 영화제
    오스카,칸 영화제

     

    시상식 시즌만 되면 다들 한 번쯤 비슷한 의문을 가집니다. 분명 잘 만든 영화 같은데 왜 흥행은 안 됐을까, 혹은 다들 재밌게 본 영화인데 왜 상은 못 받았을까 하는 의문이죠. 오스카와 칸이 주목하는 작품에는 분명 어떤 공통된 결이 있습니다. 그 결을 따라가다 보면, 상을 받는다는 게 단순히 잘 만든 영화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보입니다. 영화시상식트렌드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영화를 보는 시선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영화시상식트렌드의 현재: 오스카가 주목하는 작품들의 공통점

    2026년 오스카만 봐도 그 흐름이 또렷합니다. 작품상은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가 가져갔는데, 감독상과 각색상까지 포함해 여러 부문을 휩쓸었습니다. 미국 사회의 균열과 혼란을 정면으로 다룬 이 작품이 작품상을 받은 건 우연이 아니었을 겁니다. 아카데미 투표권자가 만 명을 넘기면서, 단순히 잘 만든 영화보다 지금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한 영화를 더 주목하는 분위기가 강해졌거든요. 같은 해 16개 부문 후보로 오스카 역사상 최다 기록을 세운 시너스: 죄인들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흑인 커뮤니티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끌고 온 이 작품이 이렇게 많은 후보에 오른 것도, 다양성을 향한 흐름이 한순간의 유행이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흥미롭게도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장편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동시에 가져간 것도 눈에 띄는 변화입니다. 예전 같으면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 부문에서만 조용히 다뤄졌을 텐데, 이제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화제성과 음악성까지 평가받는 거죠. 결국 지금 오스카가 주목하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사회적 메시지와 화제성을 동시에 가진 작품이라는 겁니다. 잘 만든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무언가를 건드려야 한다는 뜻이죠. 예전 같으면 정치적으로 너무 직접적인 영화는 오히려 표가 갈리기 마련이었는데, 요즘은 반대로 그 직접성 자체가 강점이 되는 분위기입니다. 트럼프 시대의 혼란을 그대로 끌어온 작품이 가장 큰 상을 받았다는 게, 지금 아카데미 회원들이 어떤 작품에 마음이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셈이죠. 후보작 면면을 봐도 비슷한 흐름이 읽힙니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처럼 비교적 젊은 흑인 감독의 작품이 최다 후보 기록을 세웠다는 것 자체가, 아카데미가 누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 같습니다.

    수상의 구조: 칸이 다른 기준으로 평가하는 이유

    칸은 좀 다른 기준으로 움직입니다. 2026년 제79회 칸영화제는 박찬욱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으면서 한국에서도 유독 관심이 컸는데, 결과적으로 황금종려상은 루마니아의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이 만든 피오르드(Fjord)에게 돌아갔습니다. 수상 소감에서 감독은 관용과 포용, 공감이라는 가치를 언급했는데, 이게 칸이 작품을 보는 기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화제성이나 흥행보다는, 그 작품이 인간과 사회를 얼마나 깊이 들여다봤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는 거죠. 한국에서는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4년 만에 경쟁 부문에 올라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수상에는 실패했습니다. 아쉬운 결과지만, 이런 결과 자체가 칸의 심사 기준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화제성 있는 감독의 신작이라고 해서 무조건 상을 주지는 않는다는 거니까요. 오스카가 1만 명에 가까운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반면, 칸은 매년 바뀌는 소수의 심사위원단이 작품을 고른다는 구조적 차이도 큽니다. 그래서 칸은 좀 더 예술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에, 오스카는 산업과 대중 정서를 더 반영한 작품에 손을 들어주는 경향이 굳어진 것 같습니다. 한국 감독이 칸 심사위원장을 맡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국내에서는 큰 화제가 됐지만, 정작 심사 결과는 한국 영화에 유독 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부분이 오히려 칸의 공정성을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사위원장의 국적이나 인맥이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거니까요. 매년 새로운 얼굴들로 심사위원단이 꾸려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특정 성향이 굳어지지 않도록 계속 기준을 흔들어두는 셈이죠. 황금종려상이라는 이름도 사실 짚어볼 만합니다. 원어인 팔므도르의 'palme'는 종려나무와 대추야자 둘 다를 가리키는 말인데, 실제 트로피 모양은 대추야자잎에 더 가깝다고 합니다. 번역이 굳어져서 그냥 황금종려상으로 불리고 있는 거죠. 이런 디테일 하나에서도, 칸이 얼마나 오랜 전통과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영화제인지가 느껴집니다.

    흥행과 작품성 사이: 상 받는 영화는 왜 늘 흥행과 엇갈릴까

    그럼 상 받은 영화는 항상 흥행도 잘 될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생충이나 아노라처럼 칸과 오스카를 둘 다 거머쥐면서 흥행까지 따라온 경우는 오히려 드문 사례에 가깝습니다. 대부분의 칸 수상작은 예술영화관 중심으로 조용히 상영되고, 국내 일반 관객들에게는 제목조차 낯선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흥행에서 압도적인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도 못 오르는 일도 흔합니다. 이런 간극이 생기는 이유는 결국 보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상식은 영화인과 평론가, 산업 관계자들의 기준으로 움직이고, 흥행은 일반 관객의 즉흥적인 선택으로 결정되니까요. 다만 최근엔 이 간극이 OTT 덕분에 조금씩 줄어드는 분위기도 보입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처럼 넷플릭스에서 압도적인 시청 기록을 세운 작품이 동시에 시상식에서도 인정받는 사례가 나오고 있거든요. 앞으로는 평론가의 인정과 대중의 사랑이 완전히 갈라진 두 갈래가 아니라, OTT라는 플랫폼을 통해 조금씩 다시 만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좋은 영화의 기준은 하나가 아니라는 걸, 매년 엇갈리는 이 결과들이 계속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국내 영화 시장만 봐도 이런 간극이 자주 보입니다. 평론가들의 평이 갈리는데도 관객수는 폭발적인 영화가 있고, 평단의 찬사를 받았는데 정작 스크린 수가 적어서 흥행 집계 자체가 초라한 영화도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그 영화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평가 기준이 다른 관객층을 만난 결과일 뿐이죠.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가져간 기생충이나 아노라가 유독 회자되는 것도 그게 정말 드문 일이기 때문일 겁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영화는 시대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정도니까요.

    마무리

    매년 시상식 시즌이 지나고 나면, 정작 그 영화를 챙겨본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게 늘 아이러니합니다. 여러분은 올해 수상작 중 몇 편이나 직접 보셨나요. 상 받은 영화와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꼭 같지 않아도 된다는 걸 떠올리면서, 한 번 직접 챙겨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의외로 그 안에서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